내가 가담한 민주화 운동이라는 폭력

1990년 중반, 저는 시위대 속에 있었어요. 맨 끝에 있었어요. 시위대의 앞에서는 꽃병을 들었어요. 보도블럭을 깨서 짱돌을 던졌어요. 날아오는 지랄탄을 밟아 무력화시키던 선배는 겁나 멋졌어요. 시위가 끝나면 전경들이 헬멧이나 방패를 찾으러 왔어요.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장비를 전해줬어요. 신문은 폭력적인 학생들이 시위를 일으켰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선량한 전경이 얼마나 다쳤는지를 이야기했어요. 학생회관 입구, 잠자리 안경을 쓴 열사의 흑백사진 앞에는 언제나 촛불이 타고 있었어요. 1996년, 군대에서 연대 농성을 봤어요. 많은 사람이 다쳤어요. 남몰래 눈물을 닦았어요. 누굴 지지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다치는게 마음 아팠어요. 사람이 다쳐서 마음이 아픈 것과는 별개로 경찰, 백골단의 폭력과 반국가단체로 낙인 찍히고 토끼몰이를 당했던 시위대의 폭력에 대해서는 생각할 지점이 많아요. 제가 무슨 대단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열심히 참여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제 대학 시절은 열사와 종북 사이에 낀 애매한 특이점이기도 했어요. 안 나가면 선배들이 욕하거나 때리니까 나갔고, 꼴랑 200만 원이던 등록금이 비싸서 나갔어요.

광주 시민군

김영삼 정권 시절이면 그래도 평화로웠죠. 제 선배들은 더 대단한 민주 투사에요. 유신에 저항하고 신군부에 저항했어요. 제가 가담한 운동처럼 꽃병도 말았고 짱돌도 던졌을 거에요. 더 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거에요. 80년 광주에서는 경찰서와 군수산업체를 습격해서 총을 쏘고 장갑차도 몰았어요. 미 문화원에 불도 질렀죠. 그것들은 모두 민주화 운동으로 기록되고 국가적 배상도 받고 교과서에도 실려요. 시위대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건 일베라는 찌질이 집단과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일부일 뿐이에요. 어떤 폭력은 투사로, 레지스탕스로, 자유를 위한 저항의 상징으로 기록돼요. 누군가는 그것을 좌파 빨갱이 쓰레기들의 국가전복행위라 평해요. 어떤 폭력은 인륜을 거스르는 절대 악이에요. 누군가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이 행하는 같은 폭력을 정당화하죠.

무엇이 폭력을 평가하는 기준일까요?

착한 폭력, 나쁜 폭력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철저한 계획을 세웠죠. 사람이 많이 모인 기차역에서 챙겨온 권총을 꺼내 빵야 빵야 빵야, 세 발을 발사했어요. 혹시 잘못 쐈을까 싶어 옆에 있던 사람도 쐈어요. 그는 법의 이름 아래사형을 선고받아 생을 마감했어요. 1909년에 하얼빈 역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타겟에게 문안 인사를 갔어요. 담소를 나누다 총을 쐈어요. 그는 형기 감소와 사면으로 자유인이 되었어요. 하지만 세상은 그를 비난하고 린치를 가했어요. 결국, 사적 ‘정의구현’을 당해 세상을 등졌어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이야기에요.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었어요. 타겟은 정말 나쁜 놈이었어요. 몽둥이를 준비했어요. 그놈의 집에 침입해서 죽을때 까지 몽둥이를 휘둘렀어요. 꼴까닥. 죽었어요. 그는 살인죄로는 꽤 낮은 형량을 받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물심양면 지원해주었어요. 영웅이 되었어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를 때려죽인 박기서의 이야기에요.

1980년 광주는 폭력과 폭력의 충돌이었어요. 무장한 시민군과 육군, 공수부대의 싸움이었어요. 신군부는 계엄을 선포했고 시민들은 시위를 했어요. 신군부는 발포했고 시민군은 무기고를 털어 총과 폭탄을 탈취하고 군수업체를 털어 트럭과 장갑차를 탈취했어요. 건물에 TNT를 설치하고 시가전을 벌였어요. 폭력적이에요. 하지만 폭력성만을 말하며 광주를 폄훼하는 건 수준이 낮아요. 광주는 신군부의 계엄과 발포, 왜 시민들은 무기를 들게 되었는지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하죠. 실제로 그렇게 민주화 운동으로 기념하고 있어요. 미문화원에 불을 지르고 빠이쁘를 휘두르고 파출소에 화염병을 투척하던 사람들도 폭도에서 투사가 되었죠.

세상은 폭력에 점수를 매겨요.  심지어 그 점수는 1차원 그래프가 아니에요. n개의 평가 기준이 존재해요. 모든 폭력은 나쁘다는 말은 카스트를 옹호하고 종교갈등을 방치했던 마하트마 간디도 할 자격 없어요. 요즘엔 아동용 만화나 영화도 일차원적인 캐릭터를 만들지 않아요.
유치하니까요.

폭력이 폭력적이어서 나쁜 게 아니에요.
어떤 폭력은 폭력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쁘고
어떤 폭력은 폭력적임에도 정당해요.

일베의 폭력

전 일베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이 있어요. 2010년인가 2011년인가, 일베가 뭔지 아무도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날 일베라는 걸 보여주더라고요. 토 나왔어요. 헤어졌어요. 일베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요. 하지만 평가는 달라요. 초창기 일베는 극우성향 또라이들이 잉여 리비도를 발산하는 공간이었죠. 별다른 평가도 없었고 먹이도 주지 않았어요. 그들의 행동은 ‘일탈’이었어요.

2012년에는 일베 안팎에서 비판을 받는 사건들도 꽤 있었어요. 그래도 아직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어요. 진중권은 일베 회원과 토론도 했어요. 어머나.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죠. 그들은 아직 일탈을 일삼는 젊은 극우들의 웹사이트일 뿐이었어요.

일베의 사상

정성이 뚝뚝 묻어나는 <일베의 사상>

2013년은 분석이 일어나요. 박가분은 <일베의 사상>을 썼어요. 269페이지나 된데요.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부터 논객, 촛불시위, 나꼼수 등 일베의 탄생에서 그들의 비뚤어진 사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우리 세대의 한계는 무엇이며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 꼼꼼하게도 써놨데요. 분석은 표창원도 해요.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이야기해요. 논문도 나와요. 중앙대 신문은 일베를 쉽게 정의내리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기도 해요. (링크) 그들의 폭력은 조심스럽게 분석되었어요. ‘우리 안의 일베’를 탐구했어요. 왜 그들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5W1H가 쏟아졌어요. 그들은 그때나 그 전이나 또라이 집단이었고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요.

그들이 절대 악이 된 것은 2014년부터에요. 세월호가 결정적이었죠. 폭식투쟁을 하고 어묵 드립을 쳤어요. 2015년에야 만물 일베설이 나왔어요. 일반화라는 현상이 용어가 된 것이죠. 찌질이 집단이 아닌 절대 악으로의 평가는 일베 탄생 이후 한참이 지난 후였어요. 일베의 폭력은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들이 쌓여 현재 일베의 이미지가 만들어졌죠. 이것은 폭력을 평가하는 좋은 예시에요. 그럼 현재 일베는 폭력적이기에 더 이상의 평가는 필요 없고, 그냥 그들을 악마화하면 되는 걸까요?

전 일베가 IMF 시절 유년기를 보낸 이들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10대 남성들의 상실을 대변한다 봐요. 지금의 세상은 그들에게 절대 악인 좌파정권이 만들어냈죠. 그들의 인생에서는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리고 좌파들은 사사건건 세상의 룰을 수호하는 애국보수의 발목을 잡아요. 이 생각의 흐름은 일베를 매개로 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어요. 소위 ‘민주화’ 세력이라는 좌파가 그들에게 주었던 세상을 반성하고 그들을 위로하지 않으면서 정권만 잡으면 언젠가 극우 정치권력의 부상을 보게될 거에요. 전 홍준표가 생각 없이 막 나가는 거 아니라고 생각해요. 차차기 노리면서 행동하는 걸 거에요.

일베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일삼는 폭력집단이기도 해요. 그래도 그것이 일베를 만들어낸 시대배경을 절대 선으로 만들지 않아요. 단순히 일베 용어를 쓴다는 이유로 개인을 악마화하면 안된다는 조심스러운 접근도 이루어져요. 일베는 폭력적이고 악으로 퉁 칠 수 있지만,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면 인문학자들 다 굶어 죽어요. 우린 그 원인을 분석하고 나의 잘못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야 해요. 나는 일베를 만들었어요. 내 안에도 그들이 있고 전 반성해야 해요.

여자 일베

2015년 메갈리아가 등장해요. 글을 쓰는 2016년 중반, 그들은 새로운 악의 엑기스에요. 만물은 메갈에서 탄생했어요. (언어) 폭력을 일삼는 지독한 썅년들이죠. 그 폭력성은 내가 판단해요. 분석도 필요하지 않아요. 그 원인도 중요하지 않죠. 왜냐하면.

폭력적이잖아요?

메갈의 역사를 아는 대로만 읊어볼께요. 전 캐나다에 계속 있어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메갈의 역사는 무시되거나 윤색돼서 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2015년 5월 한국은 메르스 공포에 휩싸였어요. DC 인사이드는 발 빠르게 메르스 갤러리를 만들었어요. 메르스 확진자가 홍콩에 격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일베 등에선 이를 여성으로 규정하고 김치녀가 민폐라는 글이 게시되었어요. 너무 전형적인 반응이었고 그곳엔 혐오스러운 단어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내 이것이 남성으로 밝혀졌어요. 분노한 여성들은 DC의 메르스 갤러리로 몰려갔어요. 김치녀에 대항하는 김치남이란 단어를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세상이 여성을 취급했던 방식대로 남성들을 조롱했어요. 기분이 좋았거든요. DC는 김치남을 금칙어로 만들었어요. 김치녀는 놔뒀어요. 여성들은 금칙어를 피하기 위해 씹치남을 만들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몇 년이나 유통되던 김치녀도 금칙어가 되었어요. 그리고 메르스 갤러리는 같은 해 8월, 메갈리아라는 이름으로 독립 사이트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서로 똥을 던지고 놀던 DC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똥을 던지니까 욕설을 금지시키는 등 계몽을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이제 꼴랑 1년 지난 이야기에요.

메갈리아는 지금껏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했던 방식 그대로 남성을 혐오하기 시작했어요. 때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도 했어요. 대놓고 욕하자는 사이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게시물을 올렸는데 별별 인간들이 다 있었겠죠. 게이와 장애인을 비하하는 일이 논란이 되자 메갈리아의 운영진은 ‘소수자 혐오 금지, 싫으면 중이 떠나세요’라는 공지를 올렸어요. 워마드의 탄생 배경이에요.

페이스북에 메갈리아의 게시물을 퍼 나르던 메갈리아 페이지가 있었어요. 곧 페이스북 코리아에 의해 폐쇄 당했어요. 혐오스럽데요. 김치녀 페이지는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있어요. 많이들 신고 하는데 아직 있어요. 메갈리아2가 만들어졌어요. 미러링을 하지 않았어요. 폐쇄 당했어요. 메갈리아3가 만들어졌어요. 미러링을 하지 않았어요. 폐쇄 당했어요. 그리고 지금의 메갈리아4가 생겼어요. 메갈리아2 부터 메갈리아 게시물을 퍼 나르지 않았고 로고와 이름 말고는 연관성을 찾기 힘들어요. 그래도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이 빨갱이나 저 빨갱이나 빨갱이에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났고 모두 궁예가 되었기 때문이죠.  ‘적’을 만드는 매우 효과적이고 무책임하고 간단한 방식이죠. 폭력의 이유든 그 배경인 사회 현상과 여성의 분노는 개나 줘요.

멍멍멍.

메갈의 폭력

메갈리아는 폭력적이에요. 여혐이라는 폭력의 반작용으로 발생한 현상이니까요. 하지만 그 폭력에는 실체가 없어요. 아직은요. 메갈이 행하는 폭력은 소설인 경우가 많아요.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누구나 써왔던 폭력적 어휘에 점하나만 찍는 것 이상의 폭력성은 없어요. 악하다는 거 알지만, 일부러 그러는 거에요. 용어도 있어요. 위악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 폭력성은 너무나 신속하게 평가되었죠. 그 평가는 깊이도 없었어요. 그 폭력성을 바탕으로 집단 전체가 악으로 규정되는 것 역시 엄청나게 신속했어요.

왜 그럴까요?

아직도 이야기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좆린이 사건이죠. 한 메갈 유저가 남성 유아들을 ‘좆린이’라 칭하는 글을 올려요. 메갈 밖에서는 이를 절대 악으로 규정해요. 곧 글쓴이의 신상이 털렸어요. 글쓴이의 메신저는 욕으로 도배되었어요. 얼마 후 글쓴이는 메갈에 글을 올려요. 그는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였어요. 그는 글에서 이렇게 말해요. 자신의 아픔이 더럽게 소비되는 로린이라는 단어에는 1도 관심 없던 사람들이 자신이 좆린이라는 가상의 단어를 만들자 사냥을 시작했다고요. 실제로 유통되며 힘을 가지는 로린이라는 단어와 아무런 실체도 없는 좆린이는 발화자와 지칭하는 대상의 성별만 다를 뿐 똑같은 수준의 단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실체가 아닌 허상에 정의봉을 휘둘렀어요.

놀이터에서 남자아이를 팼다는 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몰라요. 누가 썼는지도 몰라요. 그 작자 미상의 소설도 메갈리아의 전체 성격을 규정짓는 엄청난 비중의 근거가 되죠.

메갈의 어떤 폭력들은 정말 폭력적이기도 해요. 근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음해하거나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그럼 메갈리아는 폭력적일까요? 그들은 수많은 사람의 집합인 메갈리아를 얼마나 대변할까요? 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에서 경찰 버스를 넘어뜨리거나 경찰 버스에 꼬추를 그리는 일들을 볼 수 있어요. 게으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죠. 게으른 누군가는 시위 자체가 폭력시위일 수 있죠. 법적으로 처벌 받아야 하는 폭력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들이 가지는 대표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집단의 폭력성을 평가하는 근거가 되죠. 분노할 이유는 정상참작의 이유가 돼요. 작년 제2차 민중 총궐기에서는 ‘시위가 좀 폭력적이면 어때! 이건 저들의 프레임에 놀아나는 거야! 쫄지 마!’라는 주장도 있었어요.

메갈리아는 하나의 인격체로 이해돼요. 메갈리아와 관련된 모든 주체는 각각 메갈리아에요. 메갈리아와 그에서 파생된 모든 집단들과 그에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 활동의 일부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존재로 뭉뚱그려지죠. 폭력적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을 끄집어서 메갈리아의 전체 성격이 규정되고 뿌리가 같은 워마드의 악행도 여기 버무려지고, 역시 이와 뿌리가 같은 메갈리아4 페이지 역시 그년이 그년이고 그들이 판매하는 티셔츠를 구입하는 것은 이 모든 악마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 되죠. 주적은 빨갱이고 빨간 것에서 나와서 새로 생긴 것도 빨갱이고 그 빨갱이가 파는 하얀 면으로 만들어진 굿즈를 사도 빨갱이에요. 그래서 직업적인 불이익을 받아도 싸요.

이 모든 평가에서 메갈이 이룩한 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속해요. 소라넷 폐쇄, 맥심의 사과를 이끌어낸 일 등이요. 생긴지 불과 1년인 인터넷 커뮤니티가 해낸 것들이죠. 이 모든 평가에서 메갈의 탄생 배경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혐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속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갈은 악이에요. 세상에 ‘나쁜 글’을 남기니까요. 그러니까 성우는 목소리를 삭제당해도 싸요. 그를 옹호해도 메퇘지에요. 그래서 웹툰 작가들은 검열당해도 싸요.

폭력적이니까요.

성소수자로서 전 교회 싫어해요.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서 혐오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세력이에요. 이것은 교단 차원에서 이루어져요. 교단 연합 차원에서도 이루어져요. 퀴퍼에는 우리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성소수자 결사반대를 외쳐요. 퍼레이드 길막도해요. 성소수자 관련 정책 토론이라도 벌어지면 피케팅을 해요. 1차 차별금지법 때는 법무부에 전화 폭탄이 떨어져서 법무부가 항복선언을 했죠. 폭력적이에요. 하지만 전 교회에 헌금 내는 모두가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의 직업이 목사라고 욕하지 않아요. 그건 악의적인 비약이고 망상이에요. 제 뇌 절반이 순두부가 되면 모를까. 하지만 이런 망상은 메갈리아4의 티셔츠를 구매한 성우에게는 아주 쉽게 일어났죠.

그들은 폭력적(!!!)이기에 악이고 그렇기에 자신은 정의봉을 휘두른다 생각하죠.

그들의 폭력

일베가 주인인 평행우주가 있다 쳐봐요. <지구1818>이라고 부르죠. 세상 모두가 광주 희생자 사진을 올리며 ‘홍어 배달 낄낄낄’ 거린다고 생각해봐요. 제정신인 당신은 혐오를 멈추라 하겠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요. 3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요. 당신의 생애 전체를 <지구1818>에서 보냈다고 생각해봐요. 인간 역사 전체를 <지구1818>에서 보냈다 생각해봐요. 제발 때리지 말라고, 제발 욕하지 말라고 평생을 말해왔다 생각해보세요. 씨발 소리 안 나오겠어요? 그러다 보면 흥분해서 막말할 수도 있어요. 못 해봤던 씨발거림에 신나서 선을 넘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나의 분노가 정당함을 잃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따로 평가돼야 하죠. 나의 폭력도 좋은 폭력일 수도 있어요.

폭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분노를 만들었는지, 그 분노는 정당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 가능한 선을 넘지는 않았는지, 그 선은 누가 그었는지, 그 선은 형평성에 맞는지 등등을 고민해야 해요. 평가 이후에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고민해야 해요. 늘 그래 왔어요.

김치녀는 일베가 만든 말이 아니에요. 그 이전부터 된장녀가 있어왔죠. 인터넷의 보급화가 시작된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은 여혐의 역사였어요. 여성 개인에게는 그의 나이만큼이 여혐의 역사였어요. 한민족의 역사가 5천 년이면 5천 년이 여혐의 역사였죠. 메갈리아가 생긴 지 이제 1년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폭력이라고 쉽게 정의내려지고 단죄당했죠. 평생 당해왔던 폭력은 지금도 지속되지만 그를 비틀어 방향을 바꾸자 제지당했어요.

메갈리아에 대한 마녀사냥은 폭력이에요. 이것은 매우 게으른 폭력이에요. 소파에 앉아 팝콘을 씹으며 타인을 낙인 찍는 폭력이에요.

그렇게 게으르게 살아왔기에 할 수 있는 폭력이에요.
공감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폭력이에요.

메갈리아의 폭력을 세상의 모든 폭력과는 다르게 취급하기에 할 수 있는 폭력이에요.

여성은 폭력을 저지를 때에도 다른 판단 기준을 적용받아요.

그것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