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성공회에 대해서 한 마디 쓸께요. 사실 성공회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 어느정도의 부담감이 있어요. 성공회에 속한 개인과 단체들이 명망있는 주체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부담감 때문이에요.

그 부담이란 <그것은 알기 싫다>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네임드에 대한 부담이에요. 그 부담감 때문에 김조감독에 대한 비판도 자유롭지 못하죠. 저야 이미 이 구역의 미친년이니… 그 부담감 때문에 성공회에 대한 비판도 자유롭지 못해요. 그 부담감 때문에 성공회의 결론을 거부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할 거에요. 그런데 성공회의 활동은 아직 ‘공론화’가 아니에요. 그 분들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그 분들의 활동은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무지개 행동> 메일링으로 중간 결과만을 받아봐요. 보통은 접근 권한이 없는 그 메일링이요. 그런데 그 중간 결과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성공회의 탄생 배경 : 나

약 두 달 전, 제가 김조광수 감독님에 대한 비판을 했고 이전까지 꽤나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김조감독님은 바짝 엎드리게 되었어요. 표현이 재수 없다고요? 사실인걸요? 전화예절 운운한 것이나,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드립이나, 김승환씨와 영화제 공식 트윗의 리트윗질 같이 ‘짖어라 나는 달린다’ 식의 대응에서 표면적으로는 무대응으로 바뀌었죠. 제게 메일을 보내 가만히 있으라 하셨죠. 중재단이 구성되고 활동할 터이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고 지켜봐 달라 하셨죠. 전 거부했어요.

왜냐?

가장 중요한 문제. “영화제는 2011년에 독립한 것인가?!”에 대한 답이 중재로 밝혀질 문제는 아니니까요. 친구에게 ‘내가 저녁 함 쏠께’라며 한마디 던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니가 밥을 샀네 안샀네로 싸우는 게 아니라구요. 무려 10년을 키워온 조직과 행사가 그 모체인 설립자에 반하여 연대가 파괴된 사건이에요. 영화제의 독립이란 공식적으로 논의가 되고 승인이 되어야 하는, 절차의 문제에요. 뉘앙스나 인식의 불균형이 사실관계를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절차만 확인하면 되는 문제이죠.

성공회는 김조감독님의 요청으로 만들어졌어요. 뭐 그럴 수도 있어요. 한쪽의 당사자가 중재기구를 두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질 수 있죠.

그런데요,

엄밀하게 이야기 하자면, 애시당초 성공회가 탄생한 배경은 영화제와 축제의 갈등 때문이 아니에요. 저 때문이죠 -_-; 영화제와 축제의 갈등상황 때문이라면 성공회는 벌써 작년에 만들어졌어야 옳아요. 축제가 새로운 영화제를 만든다고 선언한 순간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니까요.

성공회는 그 첫번째 메일링에서 자신들의 탄생 배경을 밝혀요.

성공회를 만들게 된 ‘계기’는 서울LGBT영화제의 김조광수 집행위원장이 몇몇 활동가들에게 개별적으로 만남을 요청하며 퀴어문화축제와의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 일입니다.

물론 말이란 와전될 수 있어요. 표현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선택하다 보면, 아니면 별 다른 생각 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발생하죠. 우리 생각이 대부분은 언어가 아니에요. 생각한 바를 언어로 표현하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발생하죠. 이런걸 비판하면 말 꼬리 잡기라는 거 잘 알아요. 그럼에도 이 표현은 좀 맘에 안 들어요. 이런 식의 표현은 영화제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보이거든요. 축제와의 ‘협력 방안’이라… -_- 웃겨요.

축제와의 협력을 원하신다면 축제에 연락해야 맞지 않아요? 불과 일주일 전 까지 개막식 자리 빼 달라고 문자까지 보내셨던 사이잖아요? 축제에 요청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다짜고짜 연락해서 화해합시다 하기 껄끄러우면 중재단을 제안할 수도 있었겠죠. 우리 갈등 상황이 깊어지고 장기화 되어서 성소수자 판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으니 중재기구를 두어 논의합시다. 이렇게요.

축제는 전혀 몰랐어요. 심지어는 중재단도 자기가 중재단인지 몰랐데요. -_- 김조광수 감독님의 측근들을 제외하고 중재단의 존재에 대해 알게된 최초의 인간이 저일걸요? 축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신 분이 왜 축제에는 이야기 안하고 제게만 이야기하셨죠? ‘ㅅ’

중재단이 구성된 계기는 제가 감독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그것이 퍼지면서 취하신 방어 전략이었지 축제와의 갈등상황 때문에, 축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취하신 행동이 아니었어요. 중재단이 만들어진 계기는 김조광수 감독님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에요.

김조감독님이 원한 건 축제와의 협력이 아니었어요.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차단하는 것에 있었죠. 중재단=성공회 분들은 축제와 영화제의 갈등상황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참여하시고 활동하시겠지만, 당시 김조감독님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축제와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구요. 관계 개선 때문이 아니었죠. 영화제와 축제간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어요.

자료 비공개 결정

이후 중재단은 활동을 시작해요. 이름은 성공회로 정해요. 축제도 성공회의 중재에 따르기로 결정해요. 축제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도 성공회에 계신 분들의 이름값 때문이겠죠. 그렇게 판을 만드신 건 김조감독님이구요. 저도 그냥 지켜봤어요. 네임드 들이시니 합리적인 논의를 해주실 것이라고 믿었죠. 그런데 좀 이상해요. 아무래도 미심쩍음을 없애기 힘들어요.

일단 첫 회의에서 영화제측 자료의 비공개를 결정해요. 이 결정의 이유는 영화제가 그들의 자료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이전에 성공회는 축제와 영화제에 자료와 입장 공개, 언론인터뷰, SNS 등 개별적 대응 자제를 요청했어요. 그런데 자료 공개를 결정하는 시점에선 자료 공개는 각자의 판단영역이라고 하세요. 그럼 그 판단영역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됐죠.

분명 성공회는 공론화를 약속했어요. 김조감독님도 공론화를 약속했어요. 저도 공론화를 원해요. 아마 지켜보는 많은 분들도 공론화를 원할 거에요. 그리고 성공회라는 중재기구가 있어요. 그럼 성공회에서 어느 수준의 공론화를 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자료 비공개 결정은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이었죠. 결국 영화제의 자료 공개로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이는 제 문제 제기와 <그것은 알기 싫다> 때문일 거에요. 좀 진작 하셨으면 태가 났을 텐데요.

이것을 두고 성공회가 김조감독 편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너무 필요 이상으로 조심하신다는 것이죠. 너무너무 조심하셔서 어정쩡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거에요.

성공회에 계시는 분 중에 개인적으로 아는 분도 있어요. 나름 술 몇 잔 함께 하며 지낸 분도 있어요. 이는 축제측 인사들과 성공회의 관계도 마찬가지구요, 김조감독과 성공회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그럼, 성공회는 완전히 객관적인 결론을 낼 수 있을까요? 축제측 인사들과 김조감독 및 영화제측 인사들 중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런 결론까지도 염두해 두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로인해 생길 수 있는 성소수자 운동 진영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운동의 동력상실 까지 염두하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해야해요. ‘ㅅ’ 아직까지 증거들을 보았을 때 누군가는 잘못한게 맞거든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까를 논의 하셔야 한다구요. 어떤 결론을 내신다 하더라도 분열이 일어날 거에요.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꽤 어려운 짐을 맡으신 거에요.

독립이 인식의 문제인가?

누군가 회계처리를 조금 더디게 했다거나 말실수를 해서 구성원들과 마찰이 생기거나 하는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니에요. 10년을 일군 조직과 행사가 독립이 되었는가 아닌가의 문제에요. 누가 생각해도 이 부분은 너무나 명백하게 가릴 수 있어요. 따로 산지 2년쯤 되었으니 이혼한 줄 알았다? 말이 안되죠. 이혼한 증거가 있어야죠.

영리법인에서 비영리법인을 새로 내어 사업을 하거나 비영리법인의 프로젝트가 또 다른 비영리법인이 되는 등, 법인의 분리 및 독립에 대한 예는 따로 찾지 않아도 주변에 엄청나게 많아요. 어떤 멍청이가 생각해도 명백한 문제라구요. 이 명백한 문제를 우선 밝히는 것은 다음 논의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요. 나머지 논의들은 이 문제 이후라구요.

그런데 성공회는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요.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영화제의 분리/독립에 대한 인식의 불균형이 발생한 시점과 조건”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에 관한 문제이고, 이를 밝히는 것은 비교적 명확해요. 당시 회의 아젠다로 올라왔고, 논의를 하고, 결정을 했는가만 확인하면 되는 거에요. 현재까지는 아니에요. 이에 반하는 영화제의 자료인 고유번호증 문제 역시 회의를 통해 논의된 것과는 다른 행정처리를 한 결과일 뿐이에요.

만일 독립된 것이 맞다면, 이 문제는 동등한 양 주체간의 갈등 상황이에요. 그 갈등은 인식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했겠죠. 그럼 이름은 어떻고 회차는 어떻고를 논의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 정통성이 있는지, 어느 시점에서 인식의 불균형이 생겼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요. 감정소모에 대해 서로 화해하고 상생을 모색하자 제안할 수 있죠. 중재의 영역이 되겠죠.

왜냐고요? 축제는 설립자의 지위를 가지니까요. 제아무리 독립했어도 정통성이란 설립자도 어느 정도는 가져요. 설립자가 인정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정통성은 없어요. 겨우 2년이에요. 그래, 너네 조직은 독립체인 거 맞지만 설립취지를 거스른다면 그 정통성은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할 수 있는 거에요. 하지만 그 독립체에서 그걸 거부할 수도 있겠죠. 그럼 니가 맞네 네가 맞네 싸울 수 있겠죠. 이게 분쟁이에요.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한 얘기 또 하는데요, 만약 아름다운 가게가 갑자기 수익사업한다 해봐요. 아름다운 재단에서 대화를 요청하겠죠. 이건 아니잖아~ 그런데 가게가 거부해요. 우린 몰라 그딴거~ 그럼 재단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아름답다는 단어 쓰지 말라고 하겠죠? 그게 이 경우엔 분쟁이에요.

그런데.

독립된 것이 아니라면 이건 갈등이 아니에요. 명명명백백백한 잘못인 것이죠. 물론 그 잘못이 실수나 잘못된 인식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 있지만, 실수로 이 지경까지 만든 것도 잘못 맞아요. 그럼 그 다음의 논의는 완전히 달라지죠. 그 잘못의 고의성. 그 일로 인해서 누가 어떤 이득을 누리려 했는가. 누가 책임자인가? 이 경우 한정해서, 책임지고 사과하고 물러날 사람이 너무 큰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현 영화제 스텝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듬고 화해할 것인가. 이미 두 개로 나뉘어진 영화제는 어떻게 할 것이며, 그동안 벌어졌던 감정들은 어떻게 봉합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되어야죠. 독립에 대한 정의에 따라 조사와 중재의 대상과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요. 그런데 성공회는 이에 대한 답을 구하지 않고 ‘인식의 불균형’을 전제로 이야기해요. 전 이 접근 방식에 동의할 수 없어요. 이 접근은 독립된 것으로 보았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일 뿐이에요. 아직 첫번째 문제가 결론나지 않았죠. 제가 김조감독님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 ‘영화제의 독립 여부는 중재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예언이 될 줄이야.

수익성

성공회의 2차 경과 보고에서 사실관계 정정 요청을 해주셨어요. ‘사업자등록증’이 아니라 비영리단체에게 발행되는 ‘고유번호증’이라고 해요. 네, 이 부분은 제가 잘못 알았네요. 영리단체에만 있어봐서요… ‘ㅅ’ 아마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영리 이야기를 해서 그랬겠죠?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는 주장인 것 같아요.

법인 분리과정에 대해서 서술할 때 이것이 사업자등록증이건 고유번호증이건 별로 다를 건 없어요. 중요한 건 새로운 법인을 만들 때 승인이 되었는가이죠. 이 과정이 서로 독립을 인지한 것을 뒷받침하느냐는 문제에요. 이전에 대표자명만 바꾼다는 회의록이 존재해요. 그리고 이후에 도장 드립이 나오죠.

수익성에 대해서는 제가 먼저 다른 부분을 이야기했네요. 적어도 김조감독에게는 영화제가 수익을 줄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요. <레인보우 팩토리>와 관련하여 그 정황증거도 충분히 이야기 했어요. 사업자등록증이라는 표현은 제가 잘못 썼어요. 인정해요. 그런데 영리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는 주장을 하시고자 하신다면 이에 대해서는 아직 동의하기 힘들어요. 적어도 <호수의 이방인>이 1월에 수입 결정, 상영작 선정이 되고 4월에 개막작 선정이 되는 경위 정도는 밝혀 주셔야죠. 2014년 영화제가 김조광수 특별전이 된 경위 정도는 밝혀 주셔야죠. <라잇온미>가 2013년에 또 걸리게 된 경위도요. 🙂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이야기한 것들 중에 오류가 있는 부분도 있어요. 제가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핵심적인 논의에서 그렇게 중요한 내용들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결론

옳고 그름은 딱 나누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명제를 쪼개고 쪼개면 어떤 것은 가능할 수도 있죠. 이 사건 전체를 봤을 때, 잘못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어떤 면에서는 오류를 범했겠죠. 영화제측의 자료대로 한채윤과 홀릭은 말할 때 마다 말 바꾸는 반 사회적 인격장애일 수도 있죠.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요, ‘2011년 영화제가 독립되었다’는 명제의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그렇게 애매모호한 일일까요? 인식의 문제일까요?

그 명제는 알파요 오메가에요. 가장 중요한 사실관계이고, 2013년 김조감독님의 행동 근거가 되었죠. 아직도 영화제는 이를 근거로 주장을 펼쳐요. 축제측에서는 부정하는 명제이고, 이에 대한 근거자료가 있죠. 이것의 참/거짓 여부에 따라 이후 논의 방식이나 처리 방법은 완전히 달라져야해요.

만일 성공회가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중재의 영역으로 바로 간다해도, 축제는 그 중재를 거부하기 힘들 거에요. 네임드의 문제인 것이죠. 아무리 강제할 수 없는 중재라 할지라도 그 결과를 거부하는 것은 부담이 될 거에요. 중립적인 성공회의 중재를 거부한 찌질이가 될테니까요. 잘못된 결과를 수용해도 찌질이가 될 거에요. 그것이 제가 논의 중에 이런 글을 써서 끼어드는 이유에요. 괜한 걱정을 하는지도 모르죠.

지켜보고 있습니다. +_+

* 목차 : 김조광수 아카이브